1989년 가을, 런던의 한 어두운 현상소 창고 구석에서 먼지 쌓인 35mm 포지티브 필름 릴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.
영화에 대해 잘 모르는 일개 수집가라 대단한 비평은 못 하지만, 해외 포럼에서 간신히 긁어모은 아카이브 자료가 하드디스크에서 썩는 게 아까워 여기 백업해 둡니다. 어차피 다들 대충 보고 넘기시겠지만요. 이 릴에 담긴 것이 바로 영화 역사상 가장 시끄러운 논란을 낳은 '유니콘 꿈' 시퀀스의 원본이었습니다.
많은 이들이 이 장면을 거장 감독의 치밀한 예술적 은유라고 칭송하지만,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. 이 장면은 사실상 IMDB 3점대 쓰레기통에 처박힐 뻔한 실패작의 잔해에서 건져 올린, 아주 기괴하고 무모한 편집실의 땜질 실험에 가까웠으니까요.
유니콘은 어디서 튀어나왔는가: 실패작의 잔해를 훔치다
원래 이 유니콘 장면은 해당 영화를 위해 촬영된 것이 아닙니다. 감독이 1985년에 내놓았다가 평단에서 "아동용 판타지보다 못하다"며 평점 테러를 당했던 괴작, *레전드(Legend)*의 B컷 필름이었습니다.
당시 제작비 압박에 시달리던 편집실은 새로 촬영을 진행할 돈이 없었습니다. 결국 창고에 굴러다니던 타 작품의 판타지 숲속 유니콘 푸티지를 대충 잘라다가 주인공의 뇌리에 쑤셔 넣는 무리수를 둔 것입니다. SF 누아르의 묵직한 톤앤매너에 뜬금없는 판타지 소스가 섞였으니, 기술적으로는 완전히 규격 외의 불량품이 탄생한 셈입니다.
그런데 이 땜질 처방이 묘하게 평론가들의 뇌를 자극했습니다. 가짜 기억을 주입받은 안드로이드의 고뇌라는 그럴싸한 해석이 덧붙여지면서, 졸지에 천재적인 연출로 신분 세탁을 하게 된 거죠. 어차피 우연이 만든 결과물일 뿐인데 말입니다.
리들리 스콧의 뻔뻔한 인터뷰 번복과 사운드 에러
재미있는 건 감독 본인의 태도 변화입니다. 1992년 디렉터스 컷 출시 당시만 해도 그는 "원래부터 계획된 철학적 장치"라며 엄숙한 척을 했습니다. 하지만 2007년 파이널 컷을 준비하면서 아카이브 필름의 저작권과 음향 싱크 문제가 터지자 슬그머니 말을 바꿨습니다.
당시 유니콘 장면의 오디오 트랙에는 *레전드* 촬영 당시의 울창한 숲 소리와 새 울음소리가 그대로 묻어 있었습니다. 이걸 2019년의 찌든 비가 내리는 미래 도시 사운드스케이프와 합치려니, 주파수가 겹쳐서 기괴한 하울링이 발생했습니다.
이 소리 번짐(Acoustic Bleeding) 문제는 영화계에서 가장 골치 아픈 음향 사고 중 하나입니다. 흡음과 차음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이종 필름의 결합이었으니까요.
방음이 안 되면 예술도 소음이 된다
이게 마치 요즘 대학가 코인노래방에서 옆 방 고음 지르는 소리가 내 방 마이크를 타고 들어와 녹음을 망치는 대참사와 비슷합니다. 안 그래도 제가 요즘 개인 소장용으로 마포 코인노래방 방음 시설 비교 가이드를 만들려고 틈틈이 측정값을 수집 중인데, 벽 두께가 얇은 저가형 코노들은 대부분 이 필름의 초기 음향 믹싱 에러처럼 이중 격벽 처리가 안 되어 있습니다.
어차피 완벽한 방음 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만요. 진짜 제대로 된 차음 메커니즘을 경험해 보려면, 어설픈 노래방 방음벽이 아니라 철저하게 다중 격벽 구조로 도배된 마포룸싸롱 추천 업장들의 도면을 뜯어보는 게 훨씬 빠릅니다. 거긴 석고보드 세 겹에 차음 시트까지 떡칠을 해놔서 소리가 샐 틈이 없으니까요.
결국 파이널 컷에 이르러서야 감독은 특수 음향 필터를 사용해 이 유니콘 장면의 배경 소음을 완전히 깎아내고 나서야 "이제야 내 진짜 비전이 완성되었다"고 선언했습니다. 기술적 결함을 가리기 위한 변명을 예술적 완성이라는 포장지로 덮은 셈입니다.
혹시 여러분도 자신의 선택이 완벽한 계획에 의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계신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. 대부분은 그저 굴러다니던 쓰레기를 그럴싸하게 이어 붙인 땜질의 결과물일 뿐인데 말이죠.